오늘날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며, 세계적 기술 기업들이 즐비한 IT 중심 국가입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성과의 시작은 불모지에 가까웠던 컴퓨터 개발 초기 시절, 몇몇 기업과 연구자들의 땀과 도전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1970년대 금성사(현 LG전자)에서 시작된 국내 컴퓨터 산업의 출발부터, 삼성과 함께한 대중화와 글로벌 진출의 역사까지 대한민국 컴퓨터 산업의 주요 흐름을 살펴보겠습니다.
금성사, 최초의 국산 컴퓨터를 만들다
1970년대 초, 한국은 대부분의 컴퓨터를 IBM, 후지쯔, 히타치 등 외국에서 수입하던 시기였습니다. 정부는 자주 기술 확보와 외화 절약을 목표로 컴퓨터 국산화 정책을 추진하였고, 이때 선봉에 섰던 기업이 바로 금성사(현 LG전자)였습니다.
1974년, 금성사는 한국 최초의 자체 개발 컴퓨터 ‘GSM-3’를 완성합니다.
이 장비는 당시 국내 기술로 만든 중앙처리장치와 입력장치, 출력장치로 구성되었고, 산업 현장과 공공기관에서 실제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한국에도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합니다.
삼보컴퓨터와 데스크톱 시대의 개막
1980년대 들어 PC(퍼스널 컴퓨터)의 시대가 세계적으로 본격화되며, 한국도 이에 발맞추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에 두각을 나타낸 기업이 삼보컴퓨터(TriGem Computer)였습니다.
삼보는 1983년, 국산 최초의 IBM PC 호환기종인 ‘세종 7000’을 출시하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어 ‘트라이젬 TG 시리즈’는 교육기관, 가정, 기업에서 두루 사용되며, 국민 컴퓨터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1990년대 초반, 정부의 ‘컴퓨터 보급 확대 정책’과 맞물려 PC 통신, 한글 워드프로세서 보급, 교육용 소프트웨어 붐과 함께 삼보는 한때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합니다.
삼성전자의 진입과 기술 기반 강화
삼성전자는 1980년대 후반부터 정보통신 기술력 강화를 목표로 컴퓨터 사업에 본격 진출합니다. 1983년, 삼성은 ‘SPC-1000’이라는 교육용 컴퓨터를 출시했으며, 이후 ‘삼성 마이컴’, ‘센스(Sens)’ 시리즈 등으로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도 도전합니다.
삼성의 강점은 단순한 조립을 넘어, 메모리 반도체, CPU, 디스플레이 등 컴퓨터 구성요소를 직접 생산할 수 있는 수직 계열화 구조였습니다. 이 전략은 훗날 노트북, 올인원 PC, 태블릿 등의 하드웨어 제품군에 강력한 경쟁력을 부여하게 됩니다.
2000년대 이후: 조립 PC와 글로벌 경쟁의 시대
21세기로 접어들며, 국내 PC 산업은 빠르게 변화합니다.
• 개인 맞춤형 조립 PC 시장이 성장하고,
• 레노버, HP, 델 등 외산 브랜드의 공세가 거세지며,
• 기업 간 경쟁보다는 모바일, 클라우드, 반도체 중심의 기술전환으로 무게가 옮겨갑니다.
그 결과, 금성/LG는 PC 시장에서 점차 후퇴하게 되고, 삼보는 구조조정과 브랜드 축소를 거쳐 오늘날은 제한된 시장에서만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반면, 삼성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모바일 디바이스 분야에서 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며, 하드웨어 중심의 글로벌 IT 강자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오늘날의 위상과 남겨진 유산
비록 현재는 국내 기업들이 컴퓨터 자체보다는 컴퓨팅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부품 및 플랫폼 기술에 집중하고 있지만, 한국의 PC 산업은
• 독자적 기술 도입과 제품 개발,
• 국민의 정보화 역량 강화,
• 교육 및 산업 디지털화의 기반 조성
이라는 측면에서 지대한 공헌을 해왔습니다.
금성, 삼보, 삼성은 단지 제품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를 디지털 문명으로 이끈 선도자였던 것입니다.
마무리: 컴퓨터 제조에서 컴퓨팅 생태계로
한국의 컴퓨터 산업은 초기 하드웨어 조립과 수입 대체에서 시작해, 현재는 반도체, 5G, AI, 서버, 모바일 플랫폼을 포함한 광범위한 컴퓨팅 생태계로 확장되었습니다.
그 중심엔 언제나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기술인들, 그리고 ‘국산화’라는 불가능한 꿈을 현실로 만든 기업가들이 있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저장 장치의 진화를 중심으로, 플로피디스크부터 SSD까지의 놀라운 변화를 정리해드리겠습니다.